<가변하는 소장품전>, 관계 · 크기 · 장소가 만들어내는 변화의 예술

<가변하는 소장품 전> 포스터

 

 

국립현대미술관

#1. 전시 인사말 ‹가변하는 소장품› 전을 찾아주신 관람객 여러분, 반갑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 가운데 다양한 조건과 ‘가변적인’ 특징을 가진 20여점의 작품을

www.mmca.go.kr

 

 <가변하는 소장품 전>은 가변적인 특징을 가진 작품들만 한 공간에 모아둔 기획전으로, 평소 개념 미술을 좋아하면 지나칠 수 없는 전시이다. 대부분의 작품이 전시 기간 내내 변하고, 나는 전시 개막 초반에 다녀왔다. 

 

가변 작품이란?

전시를 소개하기 앞서, 가변 작품에 대해 간단하게 이야기 하고 싶다. 가변 작품은 고정된 형태나 크기를 갖지 않고 상황에 따라 변화할 수 있는 특성을 가진 예술 작품을 의미한다. 이번 전시에서 국립 현대 미술관은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일반 회화나 조각과 달리 정확하게 크기를 잴 수 없는 작품의 크기를 '가변크기'라고 설명한다. 또한 여러 구성요소와 오브제로 이루어진 설치 작품을 전시장의 크기나 조건에 맞춰 다양한 형태나 구성으로 설치하는 경우, 작품을 설명하는 명제표에 '가변설치'라고 기재한다.

출처: 부산 현대미술관

 

설명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른 가변작품의 예시로는 레인룸이 있다. MoMa(뉴욕 현대 미술관)에서도 전시되었던 작품으로, 관객이 작품을 지나가면, 모션 감지를 통해 비를 맞지 않고 걸을 수 있게 해준다. 레인룸은 대표적인 관객 참여형 예술 작품으로 관람객의 움직임에 따라서 시시각각 그 형태가 변하며, 쏟아지는 빗속에서 젖지 않고 걸어다니는 이질적인 경험을 제공한다.

 

 

Rain Room

Thank you to the 35,000 people who came and controlled the weather with us.

rainroom.com.au

 

이번 전시는 ‘가변하는 관계’, ‘가변하는 크기’, ‘가변하는 장소’ 로 구성되어 있으며, 가변이라는 큰 주제 안에서 그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가변작품이 다양하게 변모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번 전시는 꼭 시각 작업이 아니더라도, 관객이 경험하는 무형의 감각, 기억, 잔상으로 작품의 의미와 예술 개념을 확대하는 것에 전시 의의를 두었다고 한다. 그 확장된 구분에 맞추어 각각의 작품들을 다시 곱씹고 소화해보자.

 

 


가변하는 관계

 

<아이스 테이블>, 한스 하케(Hans HAACKE)

 

전시의 시작은 한스 하케의 <아이스 테이블>이다. 개념미술이 시작된 1960년대 작품을 맨 앞에 배치한 것 부터가 굉장히 상징적이라고 느꼈다. 이 작품은 1967년 작품으로, 한스 하케는 작품에 노골적으로 사회, 정치적 문제를 담아내어 '예술이 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하다'는 제도 비판적 내용들을 지속적으로 이야기 하는 작가이다.

<아이스 테이블>의 얼음은 전시 기간동안 계속해서 얼었다가 녹기를 반복하며, 눈에 볼 수 없는 전시 공간의 온도, 습도를 가시화함으로써 작품의 형식(그리고 미술 제도) 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작품으로, 예술 작품의 가변성과 그 범위에 대해 시사한다.

 

<풍경의 소리+터를 위한 눈 1995010> , 육근병

 

넓은 전시장에 들어가면 대뜸 커다란 무덤이 설치되어 있다. 여기서 눈은 영이다. 영은 무덤 속에서 계속해 관객을 응시한다. 그리고 우리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음에도, 눈을 통해 상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짐작 한다.  우리는 너무 상대방의 눈을 바라보며 대상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마음속에 그려낸다. 

작가 육근병은 '눈'이라는 소재를 주제로 많은 작품들을 이어왔다고 한다. 우리는 말 없이 눈만으로도 많은 이야기들을 전할 수 있고, 작가는 그 과정에서 많은 영감을 받은 듯 하다.작가는 이처럼 눈을 매개체로 하는 상호 작용에 의미를 두었다고 하며, 타 전시에서는 실제 흙무덤으로 구현되기도 했던 것 같다. 

 

가변하는 크기

 

<다다익선> 복원 과정

 

우리 미술 발전에 길이 빛날 전당을 여기에 세우매
오늘 좋은 날을 가리어 대들보를 올리니 영원토록 발전하여라

국현미 과천의 상징인 <다다익선>을 국현미 서울에서 보게 되다니 새삼스럽다. 어렸을 적 엄마를 따라가 처음 봤던 <다다익선>이 어린 눈에는 너무나도 무서웠는데, 막상 성인이 되어 다시 찾아보니 그 압도감에 매료되었다. 다만, 당시에는 브라운관 수급 문제로 꽤 오랜기간 작동하지 않았는데, 또 다시 방문할 즈음에는 갑자기 불이 들어와 그 생경함에 심장이 터질듯 하였다. 이 영상은 다다익선의 복원 과정을 그린 것으로, 내가 궁금해하던 그 복원 과정을 뜻밖의 장소에서 마주치게 되어 반가웠다.

국현미 과천의 램프 코어 꼭대기의 문구는 많은 예술가들에게 귀감이 되는 것 같다. 나 또한 문구에서 느껴지는 당차고 확고한 의지가 좋다. 이 문구는 <젊은 모색 2023 전> 김동신의 <링>에서도 활용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둘의 엇갈린 운명>, 안규철

 

마치 숨은그림찾기와 같은 작품. 살아있는 선인장과 청동 선인장을 나란히 두었다. 당연히 청동 선인장은 그 자리 그대로 있지만, 살아있는 선인장은 색이 조금씩 바뀌기도, 커지기도 한다. 그 대비감을 통해 우리는 시간의 흐름을 느끼고 생명력과 영속이라는 속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가변하는 장소

<베네치안 랩소디-허세의 힘>,코디 최

 

원래의 의도대로 실외에 설치된 모습 출처: designboom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이 <가변하는 소장품전>의 주제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궁금했다. 왜 가변 작품으로 분류가 되었을까? 전시의 구성 중 '가변하는 장소'라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약간의 리서치를 해본 결과 이 작품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이 이해할 수 있었다.

 

-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원작)
국제 미술계의 주목을 받는 공간에서 도박의 이미지를 통해 현대 미술에 드리운 자본주의 논리를 풍자

- 국내 아르코미술관 (실내 전시)

한국 관객들에게 베니스 비엔날레 출품작을 소개하는 귀국 보고전의 성격으로 실내 전시

-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야외 프로젝트)

청주관 건물에 맞게 작품의 크기와 구성을 조정하여 원 의도대로 실외 전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가변하는 소장품전):
위 내용을 아울러 가변하는 의미들을 강조

 

찾아보니 작품의 원래 취지는 야외에 설치하여, 화려하고 요란한 자본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데에 있었다고 한다. 베니스 비엔날레에 전시된 이후, 국내에서도 여러 번 귀국 전이 이루어졌고 아마도 그때마다 작품의 설치되는 위치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졌다는 의미를 표방하고 싶었던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다시, 가변하는 관계

오인환 <남자가 남자를 만나는 곳>

전시장을 나서기 전, 방 한가득 펼쳐진 분홍색 면과 촉촉한 향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그 위에는 무작위로 배열된 단어들이 새겨져 있다. 작품의 제목을 보고서야 그것들이 이태원의 게이바와 클럽 이름임을 알게 된다. 작가는 향 가루로 쓰인 이 장소들의 이름을 전시 기간 동안 태움으로써, 억압받아온 개인들과 그들의 언어를 조명한다. 사회 속에서 타자화되어 살아온 이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것이다.

공간을 떠날 때, 관람객의 몸에는 작품의 향이 은은하게 남는다. 이는 소수자들이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존재하며, 그들을 존중하고 포용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듯하다. 하지만 전시가 끝난 후, 그 자리에는 잿가루만 남는다. 이것은 우리가 그들을 포용할 때, 비로소야 ‘소수자’만의 공간이 더 이상 필요 없는, 평범하고 특별히 조명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으로 변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느꼈다.

 

*사실 작품의 배치 순서는 <베네치안 랩소디-허세의 힘>이 우선이나, '향을 지닌 채로 떠난다'는 점에서 전시의 끝맺음은 이 작품이라고 느껴 글의 순서를 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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