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변하는 소장품전>, 관계 · 크기 · 장소가 만들어내는 변화의 예술

<가변하는 소장품 전> 포스터

 

 

국립현대미술관

#1. 전시 인사말 ‹가변하는 소장품› 전을 찾아주신 관람객 여러분, 반갑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 가운데 다양한 조건과 ‘가변적인’ 특징을 가진 20여점의 작품을

www.mmca.go.kr

 

4월 20일에 방문했던 <가변하는 소장품 전>에 방문했다. 갔던 날을 굳이 적어두는 이유는 전시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작품들이 전시 기간 내내 변하기 때문이다. 전시는 ‘가변하는 관계’, ‘가변하는 크기’, ‘가변하는 장소’ 로 구성되어 있으며, 가변이라는 큰 주제 안에서 그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가변작품이 다양하게 변모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가변 작품이란?

 

그렇다면 본래 가변 작품은 무슨 뜻일까? 가변 작품은 고정된 형태나 크기를 갖지 않고 상황에 따라 변화할 수 있는 특성을 가진 예술 작품을 의미한다. 이번 전시에서 국립 현대 미술관은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일반 회화나 조각과 달리 정확하게 크기를 잴 수 없는 작품의 크기를 '가변크기'라고 설명한다. 또한 여러 구성요소와 오브제로 이루어진 설치 작품을 전시장의 크기나 조건에 맞춰 다양한 형태나 구성으로 설치하는 경우, 작품을 설명하는 명제표에 '가변설치'라고 기재한다.

출처: 부산 현대미술관

 

설명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른 가변작품의 예시로는 레인룸이 있다. MoMa(뉴욕 현대 미술관)에서도 전시되었던 작품으로, 모션 감지를 통해 관객이 폭우 아래에서 '비를 맞지 않고' 걷게 해준다. 레인룸은 대표적인 관객 참여형 예술 작품으로 관람객의 움직임에 따라서 시시각각 그 형태가 변하며, 쏟아지는 빗속에서 젖지 않고 걸어다니는 이질적인 경험을 제공한다.

 

 

Rain Room

Thank you to the 35,000 people who came and controlled the weather with us.

rainroom.com.au

 

 

 


가변하는 관계

 

<아이스 테이블>, 한스 하케(Hans HAACKE)

<가변하는 소장품전>의 시작은 한스 하케의 <아이스 테이블>이다.

이 작품은 1967년 작품으로, 개념미술이 시작된 1960년대에 만들어졌다. 한스 하케는 작품에 노골적으로 사회, 정치적 문제를 담아내어 '예술이 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하다'는 제도 비판적 내용들을 지속적으로 시사하곤 하는데, 이 또한 그 예시이다. <아이스 테이블>의 얼음은 전시 기간동안 계속해서 얼었다가 녹기를 반복한다. 이는 눈에 볼 수 없는 전시 공간의 온도, 습도를 가시화함으로써 작품의 형식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작품으로, 예술 작품의 가변성에 대해 시사한다.

이번 전시는 꼭 시각 작업이 아니더라도, 관객이 경험하는 무형의 감각, 기억, 잔상으로 작품의 의미와 예술 개념을 확대하는 것에 전시 의의를 두었다고 한다. 개념미술의 역사의 시작을 함께한 작품과 전시가 시작된다는 점이 굉장히 크게 와닿았다.

 

<풍경의 소리+터를 위한 눈 1995010> , 육근병

 

<아이스 테이블>을 지나 넓은 전시장에 들어가면 대뜸 커다란 무덤이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부담스러울 정도로 큰 눈의 시선이 느껴진다. 작품의 이름은 <풍경의 소리+터를 위한 눈 1995010>로, 작가 육근병은 '눈'이라는 소재를 주제로 많은 작품들을 이어왔다고 한다. 이 깜빡이는 눈의 정체는 영이다. 영은 무덤 속에서 계속해 관객을 응시하며, 우리는 그 눈을 통해 상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짐작하게 된다. 사실 우리는 입으로 말하지 않고 눈만으로도 많은 이야기들을 전할 수 있고, 상대방의 눈을 바라보며 대상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마음속에 그려낸다. 작가는 이처럼 눈을 매개체로 하는 상호 작용에 의미를 두었다고 하며, 타 전시에서는 실제 흙무덤으로 구현되기도 했던 것 같다. 

 

가변하는 크기

 

<다다익선> 복원 과정

 

우리 미술 발전에 길이 빛날 전당을 여기에 세우매
오늘 좋은 날을 가리어 대들보를 올리니 영원토록 발전하여라

국현미 과천의 상징인 <다다익선>을 국현미 서울에서 보게 되다니 새삼스럽다. 어렸을 적 엄마를 따라가 처음 봤던 <다다익선>이 한편으로는 무서웠는데, 막상 성인이 되어 다시 찾아보니 한동안 검은 화면들 뿐이어서 내심 아쉬웠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 또 다음에 방문할 때는 갑자기 불이 들어와 그 압도감에 심장이 터질 듯 하였는데, 마침 궁금하던 복원 과정을 뜻밖의 장소에서 마주치게 되어 반가웠다.

국현미 과천의 램프 코어 꼭대기의 문구를 구현해 둔 점이 인상 깊었다. 이 문구는 <젊은 모색 2023 전> 김동신의 <링>에서도 활용되었던 걸로 봐서 그 문장만으로도 많은 예술가들에게 귀감이 된 게 아닐까 싶다. 여러 모로 국립현대미술관이 우리 미술 발전에 길이 빛날 전당으로 활약하고 있음은 확실해보인다. 

 

<둘의 엇갈린 운명>, 안규철

 

숨은그림찾기와 같이 살아있는 선인장과 청동 선인장을 두었다. 당연히 청동 선인장은 그 자리 그대로 있지만, 살아있는 선인장은 색이 조금씩 바뀌기도, 커지기도 한다. 그 대비감을 통해 우리는 시간의 흐름을 느끼고 생명력과 영속이라는 속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가변하는 장소

<베네치안 랩소디-허세의 힘>,코디 최

 

원래의 의도대로 실외에 설치된 모습 출처: designboom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이 <가변하는 소장품전>의 주제에 어떻게 부합되는지 궁금했다. 왜 가변 작품으로 분류가 되었을까? 다시 돌아가 '가변 작품'의 설명을 보자. 여러 구성요소와 오브제로 이루어진 설치 작품을 전시장의 크기나 조건에 맞춰 다양한 형태나 구성으로 설치 한다는 내용이 있다. 전시의 구성 중 '가변하는 장소'라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약간의 리서치를 해본 결과 아래와 같이 이해할 수 있었다.

 

-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원작)
국제 미술계의 주목을 받는 공간에서 도박의 이미지를 통해 현대 미술에 드리운 자본주의 논리를 풍자

- 국내 아르코미술관 (실내 전시)

한국 관객들에게 베니스 비엔날레 출품작을 소개하는 귀국 보고전의 성격으로 실내 전시

-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야외 프로젝트)

청주관 건물에 맞게 작품의 크기와 구성을 조정하여 원 의도대로 실외 전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가변하는 소장품전):
위 내용을 아울러 가변하는 의미들을 강조

 

찾아보니 작품의 원래 취지는 야외에 설치되어 화려하고 요란한 자본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데에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작품은 베니스 비엔날레 전시 후 국내에서도 여러 귀국 전이 이루어졌고, 아마도 그때마다 작품의 설치되는 위치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기에 이번 전시에 포함이 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다시, 가변하는 관계

오인환 <남자가 남자를 만나는 곳>

 

향 위에 새겨진 무작위 단어의 조합들이 보인다. 그리고 제목을 보고 나서야 그것들이 이태원의 게이바나 클럽 이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를 향 가루로 새기고 전시 기간 내내 태움으로써 억압된 개인들과 그들의 언어를 조명한다. 이를 통해 타자화되어 이방인으로서 살아가던 성소수자들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아낸 것이다. 

이 작품은 전시의 마지막 즈음에 배치되어 있어, 관람객은 향이 몸에 밴 채로 전시장을 떠나게 된다. 작품에서의 향처럼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가는 소수자들을 존중하고 포용하자는 메시지로 느껴졌다. 전시 기간이 끝난 후에는 허무하게도 잿가루만 남는다고 한다.

 

*사실 작품의 배치 순서는 <베네치안 랩소디-허세의 힘>이 우선이나, '향을 지닌 채로 떠난다'는 점에서 전시의 끝맺음은 이 작품이라고 느껴 글의 순서를 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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