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는 에세이를 자주 읽는 편이 아니다. 무엇보다 타인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삶이 그다지 궁금하지 않았다. 요즘에야 많이 반성하지만, 타인에게 무관심해왔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우연히도 어머니의 책장과 형부의 책장에 같은 책이 꽂혀 있는 것을 보았고, 우리 가족들이 어떤 이야기를 읽었는지 궁금해졌다. 이미 한차례 휩쓸고 간 베스트셀러는 다른 의미로 재미있다. 죽음의 교과서 천천히 참을성 있게 생명이 사그라드는 나를 연구하시오.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시오. 그리고 나와 더불어 죽음을 배우시오.나는 모리 선생님을 잃고 있었고, 우리 모두 모리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분의 가족들, 친구들, 졸업생들, 동료 교수들, 선생님이 그토록 좋아했던 정치 토론 그룹 사람들, 전에 함께 춤췄던 파트너들..
강렬한 표지와 특이한 제목 때문에 언젠가는 읽어야지 하던 책. 해가 짧아지기 시작하던 늦가을에 읽기 시작했다. 클라라와 태양 주인공 클라라는 햇빛을 원동력으로 하는 AF(Artificial Friend, 인공지능 친구)로, 조시라는 아이의 집에 분양된다. 조시를 포함한 세상의 아이들은 유전자 조작으로 ‘향상’되지만, 부작용으로 크게 아프곤 한다. 그런 조시를 관찰하고 보살피며, 친구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클라라의 역할이다. 하루는 조시가 모델로 서고 있는 초상화 작업에 따라간다. 알고 보니 그 초상화 작업은 단순 그림이 아니라 조시의 복제품 껍데기를 만드는 작업이었고, 조시의 어머니는 혹시라도 조시가 죽게 된다면 클라라가 그 껍데기(초상화) 안에 들어가 조시가 되길 권한다. 그리고 클라라는 그 모든 것..
문득 몇 년 전에 감명 깊게 보았던 것들이 휘발되는 것에 대한 강한 안타까움을 느꼈다. 뒤늦게서야 기록의 중요함을 깨달았다. 그래서 써본다. 올해 가장 재밌게 읽었던 책. 선생님, 일탈, 기묘한 모래의 마을회색 종족은 자기 이외의 인간이 빨강이든 파랑이든 초록이든, 회색 이외의 색을 지녔다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견딜 수 없는 자기혐오에 빠진다. 초등학교 선생님인 니키 준페이는 교직 생활을 무료히 여겨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여름휴가를 떠난다. 그가 향한 마을은 독특하게도 모래 구덩이 안쪽에 집을 짓고 산다. 그는 동네 주민의 도움으로 과부의 집에서 하루 묵게 되지만 이는 도움이 아니라 함정이었다. 그는 사구에서 나올 수가 없다. 모래는 계속해서 집에 스며들고 파내지 않으면 계속해서 귀찮게 군다. 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