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삶을 예술로 치환한 인간의 파멸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오스카 와일드

이상한 초상화

도리언 그레이는 누가 봐도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미청년이다. 그는 헨리 경의 소개로 화가 배질 홀워드를 만나게 되고, 배질은 그의 아름다움에 심취해 초상화를 완성한다. 도리언은 그 초상화를 선물로 받아 집에 들여놓게 되는데,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다.자신의 미를 잃을까 두려워하는 그의 소망이 통한 것일까? 초상화는 도리언 대신 늙어가고, 그는 영원한 아름다움을 얻게 된다. 심지어 도리언이 살아가며 죄를 저지를 수록 초상화는 더 추악한 형태로 변해간다. 그는 초상화를 누군가에게 들킬까 두렵다. 결국 그는 그림에 천을 덮고, 방에 가둔 채 문을 잠그지만, 그림을 그린 배질 홀워드는 그림을 다시 보길 희망하는데…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오스카 와일드

 

외적인 아름다움을 지녔다고 내면 또한 그러리라는 법은 없다. 도리언 또한 특출난 외모를 가졌을 뿐, 모순적인 내면을 가진 평범한 인간들 중 한 명이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예술이 삶의 고통을 대신 짊어지는 독특한 장치를 활용한다. 나는 그 비극과 괴리를 두 가지 관점으로 바라봤는데, 바로 ‘인간과 성찰’ 그리고 ‘예술과 삶’이다.

 

성찰을 멈춘 인간의 말로

그렇게 책에 빠져 있을 때 그는 단순히 악을 아름다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실현시킬 수 있는 양식으로 간주했던 것이다.

도리언이 저지른 죄는 초상화의 변화로 나타난다. 그는 그림을 마주하는 일을 꺼리고, 결국 천으로 덮어 방 안에 가둔다. 초상화를 가린 이후의 도리언은 죄를 반복하면서도 죄책감에서 점차 멀어진다. 책의 전반부와 후반부의 도리언은 거의 다른 인물처럼 보이는데, 이는 성찰 없는 삶이 어떻게 인간을 변질시키는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관점으로 보았을 때, 초상화는 내면의 타락한 양심을, 천은 그것을 외면하려는 의지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작가는 이를 통해, 인간이 성찰을 멈췄을 때, 삶은 부패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예술, 삶, 도덕판단

미(美)는 천재성의 한 형태지요. 실제로는 천재성보다 더 지고한 것입니다. 미는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으니까요.

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19세기 말 활동했던 유미주의(미가 삶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가치라고 주장하는 예술 사조)의 대표 작가이다. 그는 예술이 스스로 존재 이유를 가지며, 도덕이나 유용성의 기준으로 평가받아선 된다고 봤다. 자신의 삶을 하나의 예술작품처럼 소비하고, 심지어 자신의 타락과 고통마저 미학적으로 여기는 도리언의 모습은 이러한 유미주의적 관점에서 해석될 수 있다.

예민한 감수성들이 내보이는 격한 열정들은 본성에 상처를 입히거나, 아니면 그것들 스스로가 그 본성에 굴복해야 한다. 그런 본성을 지닌 사람을 죽이거나, 아니면 그것들 스스로가 죽어야 한다. 자잘한 슬픔과 사랑은 계속 살아남지만, 너무 큰 사랑과 슬픔은 그것들이 지닌 무게로 인해 스스로 무너지고 만다.

도리언은 “자기 자신을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만들고자 했던” 인물이다. 더이상 시빌베인의 연기가 예술적이지 않다고 이별을 이야기 하는 모습과, 자신의 말을 연극적으로 꾸며내는 모습이 바로 그 예이다. 유미주의에 따르면, 예술은 도덕판단의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 삶은 도덕판단의 대상이다. 도리언은 그 간극을 이해하지 못하고 삶을 완전히 예술로 치환해버렸을 때의 비극을 맞이하였다.

 

 

마르크스주의 미학과 유미주의

디자인 전공자로서 흥미로웠던 부분은, 오스카와일드가 윌리엄 모리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점이다. 윌리엄 모리스는 미적 사회주의(Aesthetic socialism) 혹은 마르크스주의 미학(Marxist aesthetic)를 주장한 인물로, 미술사적으로는 19세기 중반 미술 공예 운동을 일으킨 것으로 유명하다.

두 인물이 주장한 사조를 간단히 비교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미적 사회주의는 예술이 사회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계급구조와 사회적 갈등을 적극적으로 표현해야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유미주의는 예술의 세계가 사회화는 완전히 분리된 것으로, 현실의 도덕, 정치로부터 자유롭다고 주장한다. 언뜻 보기에는 상반되어 보이는 두 사조 모두 예술과 삶의 접점을 중시하며, 관습적 미학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가진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종교적 가치관을 건드린 작품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오스카 와일드

 

종교와 도덕성을 중시하던 빅토리아 시대에 맞게, 초상화라는 장치는 기독교적 요소가 반영되어있다. 도리언의 불행은 자신이 영원한 미를 얻고, 초상화가 대신 늙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장면부터 시작되는데, 이는 많은 책과 영화에서 활용되는 ‘악마와의 거래’를 떠올리게 한다. ‘악마와의 거래’ 혹은 ‘악마와의 계약’은 그 뿌리가 기독교로, 악마의 호의를 대가로 자신의 영혼을 파는 소재를 의미한다. 무려 위키피디아 문서도 있으니 심심하면 한번쯤 읽어봐도 재미있다.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가 너무 비범한 실력을 가진 나머지, 당시 악마와의 계약을 했다는 오명을 썼다는 내용도 있다.

 

 

Deal with the Devil - Wikipedia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Pact between a person and the Devil or another demon Engraving of Faust's pact with Mephisto, by Adolf Gnauth (circa 1840) A deal with the Devil[a], also known as a Faustian bargain, is a cultural motif exemplified by

en.wikipedia.org

 

 

더 재밌는 점은 기독교쪽에서 좋게 볼리 없는 소재도 들어가있다는 점이다. 바로 남성간 동성애적 요소이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인물의 기분이나 상황에 대한 묘사는 거의 없는 대신 대화 위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때문에, 인물이 어떤 심적 변화로 행동을 일으켰는지에 대해서 추측하는 것 또한 독자의 몫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황스러울 정도로 도리언 그레이의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표현이 많다는 점은 주목해볼만 하다. 심지어는 헨리경이 동성인 그의 아름다움에 심취했음을 고백하는 장면도 있다. 현대의 나 또한 이 대목이 꽤나 부담스러웠는데, 당대 독자들에게는 얼마나 큰 충격이었을까? 실제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동성애적 표현 때문에 꽤나 몰매를 맞았고, 여러번의 수정을 거친 역사가 있다고 한다.

 

 

토막 이야기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오스카 와일드

M 오스카 와일드의 무덤을 다녀온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의 무덤에는 많은 키스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함께 읽어볼만한 책

- 캔터빌의 유령, 오스카 와일드

- 시지프 신화, 알베르 카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