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참을성 있게 생명이 사그라드는 나를 연구하시오.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시오. 그리고 나와 더불어 죽음을 배우시오.
나는 모리 선생님을 잃고 있었고, 우리 모두 모리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분의 가족들, 친구들, 졸업생들, 동료 교수들, 선생님이 그토록 좋아했던 정치 토론 그룹 사람들, 전에 함께 춤췄던 파트너들까지도.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은 저자는 브랜다이스 대학교의 사회학 교수 모리 슈워츠의 제자이다. 그는 루게릭병에 걸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선생을 매주 화요일마다 찾아가 대화를 나누고 기록으로 남긴다. 모리 교수는 죽어가는 과정에서도 삶을 비관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의아할 정도로 자신의 죽음에 초연한 모습을 보인다. 죽음이라는 압도적인 존재에 대한 저항이 무의미해서일까? 아니면 어떠한 달관의 경지에 오른 것일까? 그는 마치 자기 자신을 하나의 사회과학적 연구 대상처럼 여기며, 자신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봐달라고 말한다.
죽음 앞에서의 삶의 가치들
물론 사회의 규칙을 모두 다 무시하라는 뜻은 아니야. 예를 들면 나는 벌거벗은 채 돌아다니지도 않고, 신호등이 빨간 불일 때는 반드시 멈춘다네. 작은 것들은 순종할 수 있지. 하지만 어떻게 생각할지,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여길지 등 줄기가 큰 것들은 스스로 결정을 내려야 하네. 다른 사람이, 혹은 사회가 우리 대신 그런 사항을 결정하게 내버려둘 순 없지.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우리가 가졌던 사랑의 감정을 기억할 수 있는 한, 우리는 진짜 우리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잊혀지지 않고 죽을 수 있네. (...) 죽음은 생명이 끝나는 것이지, 관계가 끝나는 것은 아니네.
모리 교수와의 대화는 삶의 주체성과 가치에 대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삶은 각기 다른 가치들을 쫓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돈이 되기도, 명예가 되기도, 이상이 되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관계나 배려, 다정함 보다 물질적인 것들이 큰 가치를 갖는다고 종종 느낀다. 모리 교수 또한, 더 좋은 것을 누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더 소중한 것들을 너무나도 쉽게 잊어버린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나 또한 그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진 못하기에, 물질적 풍요를 좇는 내 모습을 되돌아보았다. 어쩌면, 내가 매달리는 것들의 대부분이 실제로는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대와 인간성의 회복
스승은 영원까지 영향을 미친다. 어디서 그 영향이 끝날지 스승 자신도 알 수가 없다.
이미 한차례 휩쓸고 간 베스트셀러는 시대를 고찰할 수 있게 한다. 나에게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은 어머니와 형부의 책장 모두에서 발견하고, 가족들의 관심사를 알고 싶어 읽기 시작한 책이다. 모리 교수가 루게릭병을 진단 받고나서부터 TV 인터뷰도 동시에 진행했는데, 그의 이야기가 사회적으로 큰 주목을 받은 모양이다. 이 책은 해당 TV프로그램과 함께 2000년대 초반에 크게 유행했었다고 한다. 당시는 빠른 변화와 현대화에 인간소외에 대한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하던 시점으로, 스승과 제자라는 전통적인 인간관계를 그리면서, 사람들이 잃어버린 '인간적인 연결'을 회복하게 해줬다는 점에서 인기를 얻지 않았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