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여성들의 목소리로 전하는 또 하나의 전쟁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수많은 소련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은 책이다. 문학이라기에는 저널 같고, 저널이라기엔 문학 같다. 이처럼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자기만의 독자적인 글 구성을 고안하여, 여성들의 목소리를 마치 베를 짜듯 촘촘히 엮어 하나의 맥락으로 재구성한다. 이 책은 역사적 순서나 시간이 아닌 목소리들의 큰 이야기 덩어리별로 구성되어 있다. 

 

벨라루스의 작가, 그리고 승전의 기쁨과 현실의 괴리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작가는 종전 3년 후인 1948년에 태어나 벨라루스에서 자란 저널리스트이다. 당시 소련은 승리에 취해 있었고, 승전국의 영웅적 서사를 담기도 바쁠 때에 소련 여성들의 아픔을 이야기 하는 것은 사회 분위기상 터부시 되었다. 이 때문에 책은 1983년 집필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2년 뒤에나 일부 내용이 검열되어 겨우 출판될 수 있었다. 다만, 출간 이후로도 책에 대한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재판까지 열린 전적이 있으며, 약 20년이 지난 2002년에서야 검열되었던 내용들을 복구하여 재출판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작가는 왜 이러한 어려움을 무릅쓰고 승전국 여성들의 목소리에 집중했을까?

(작가의 일기장) 하지만 사람들은 전쟁의 역사를 승리의 역사로 몰래 바꿔치기해버렸다. 

위 문장으로 감히 예상해보건데, 작가는 제국주의 사회에서 말하는 승전의 기쁨과 전쟁 후 여성들이 겪는 실제적인 아픔 사이 괴리감을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 군인으로서의 요구와 여성의 책임 사이에서 많은 여성들이 고통스러워했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승전이라는 명목 아래에 더욱 주목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작가는 벨라루스의 독립 과정을 지켜보며 개인의 목소리를 모으는 방식을 차용한다. 작가 인터뷰에서 집단소설을 연구하던 동료작가 알레시 아다모비치의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으나, 각 목소리에 대한 작가의 직접적인 평가는 빠져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결론적으로는 '목소리 소설'이라는 형태를 띤 이 책은 미시 세계를 실존했던 그대로 전달하고, 거시 세계의 폭력성을 들여다보는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이야기의 배경, 세계 2차 세계 대전과 소련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역사적 흐름은 1920년 소련의 레닌 집권 당시부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소련은 폴란드-소련 전쟁으로 영토 일부를 상실하는데, 4년 후 레닌의 사망으로 스탈린이 집권하게 된다. 스탈린은 대공황으로 불안한 국제 정세에서 소련의 입지를 분명히 하고자 하였고, 숙청과 탄압 등 공포정치를 통해 자신의 권위를 빠르게 다져 나간다.

소련은 히틀러의 행보를 지켜보며 언젠가 독일과의 전쟁이 있을 것임을 확신했다. 다만, 전쟁을 준비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에 1939년 독소 불가침 조약을 맺어 일시적으로 시간을 번다. 독일은 불가침 조약 체결 한 달 후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본격적으로 2차 세계대전의 서막을 열고, 소련 또한 밀약에 따라 뒤늦게 폴란드의 동부를 침공하여 앞서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고자 하였다. 비록 시작은 폴란드였으나, 독일의 진짜 목적은 1차 세계대전으로 잃어버린 위신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최종적으로 동방 (폴란드, 소련)으로 확장하기 위해서는 예상대로 독일-소련 전쟁은 예견된 수순이었다.

그러나, 독일의 침공은 예상보다도 더욱 갑작스러웠다. 전쟁 발발로부터 약 2년 후인 1941년, 독일은 군부 숙청과 독재체제 강화로 인해 군사력이 약해진 소련을 침공한다. 이는 역사상 가장 큰 기습 작전으로 평가받는 바르바로사 작전이다. 소련은 이 시점부터를 본격적인 전쟁으로 생각해 '대조국전쟁'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기습적이고 파괴적인 공격에 소련은 속절없이 연패하며 전세에서 크게 밀리지만 스탈린그라드에서의 대규모 전투를 통해 전세를 역전하고, 이는 동부 전선의 전환점이 되어 1945년 소련의 승리로 전쟁은 끝나게 된다. 

 

인간성의 박탈, 이념, 그리고 성장하는 개인

사람들이 모성 본능이 가장 강하다고들 하잖아. 아니, 이념이 더 강해! 신념이 더 강하지!
우리는 비행을 나갈 때 '목표물을 찾아서 명중시키고 돌아온다' 딱 이 생각만 하면 됐어. 죽은 사람은 보지 않아도 됐지. 그래서 우리는 시신을 볼 때의 공포가 뭔지 몰랐어.

책은 대조국전쟁 시기를 배경으로 한 참전 여성들의 인터뷰들로 구성된다. 그중에서도 시체를 처음 보고 충격을 받는 공군 이야기부터 시작해 보려고 한다. 이 공군의 이야기가 인상 깊었던 이유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을 향해 폭탄을 떨어뜨려 많은 살인을 저질렀다는 인물이 뒤늦게야 죄책감과 혼란을 느끼는 것이 역설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는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을 때 더욱 잔혹해진다. 당연하게도, 사람을 사람으로 보면 그들을 죽일 수가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데올로기는 그러한 비인간성을 강요한다. 이는 이야기 속에서 제국주의에 대한 맹신적인 개인의 단편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억울하게 반역자로 몰렸음에도 지도자를 절대 비판하지 않거나, 전쟁 중 포로로 잡혔음에도 자살하지 않았다고 모욕을 당하는 등의 극단적인 이야기들 말이다.

(작가의 일기장) 권력과 갈등을 빚는 이유는 뭘까? 나는 그저 녹취만 하는 게 아니다. 나는 고통이 작고 연약한 한 사람을 크고 강인한 사람으로 빚어내는 곳에서 인간의 영혼을 모으고 그 자취를 쫓는다. 인간이 자라고 성장하는 그곳에서. 그러면 그 사람은 이제 더 이상 내게 말 못 하는 벙어리도, 흔적도 없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프롤레타리아도 아니다. 그 사람의 영혼조차 달라진다. 그렇다면 내가 권력과 갈등을 빚는 이유는 뭘까? 나는 위대한 사상에 필요한 건 작은 사람이지, 결코 큰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념에 큰 사람은 쓸모없고 불편한 존재라는 것을. 큰 사람은 완성되는 데 손이 많이 간다. 나는 바로 그런 사람을 찾는다.

작가는 이 책을 펴내며, 현실 세계의 이념, 권력과 계속해서 충돌한다. 책을 열면서 '위대한 사상에 필요한 건 작은 사람이지, 결코 큰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대목이 나온다. 그녀는 잔혹한 전쟁터에서 고통받는 개인이 '큰 사람'으로 성장하는 과정에 주목했다. 개인이 전쟁터에서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결국 역사를 이끄는 것은 그 작은 개인들이고, 그녀는 그 과정을 포착하고 싶었던 것이다. 전쟁이 사람을 성장시키는 게 아니라, 사람은 전쟁이라는 비극 속에서도 스스로 성장해낸다.

 

여성이라는 특수성과 내밀한 이야기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여성들의 전쟁과 그 비극은 어떠한 형태였을까? 전쟁터에서는 여성만의 위험과 어려움이 있다. 군용화가 맞지 않아 절뚝거리던 병사의 이야기, 같은 동료인 남성 병사들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이야기, 생리 피를 뚝뚝 흘리며 걸어가는 병사의 이야기, 아이와 타자기를 들고 산을 넘어가는 병사의 이야기… 책에는 생각지도 못한 형태의 전쟁들이 무수히 담겨있다. 

남자들은 전쟁에 다녀왔기 때문에 승리자요, 영웅이요, 누군가의 약혼자였지만, 우리는 다른 시선을 받아야 했지.

하지만 다른 형태인 것은 전쟁 뿐만이 아니었다. 전쟁이 끝나 여성 병사들은 살아 돌아오더라도 환영받지 못했다. 참전병인 남성들은 그들을 연애 상대로 꺼리고, 같은 여성들마저도 모욕적인 언사를 퍼부었다. 그들이 기대했던 아름다운 일상의 회복은 온데간데없고, 경멸과 자기 고뇌만이 남아, 내면적인 갈등을 극복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안타까웠다. 그렇다면 이 책을 통해 그들이 하고 싶던 이야기는 잘 전달이 되었을까?

그리고 청중을 위한 또 하나의 전쟁을 그녀는 준비해 두었다.

우리는 청중이 있을 때 덜 솔직해진다. 그리고 그것은 참전병이라고 다르진 않다. 듣는 이의 눈과 귀를 의식하고, 가장 정제된 말로 기억과 생각을 전달한다. 아무리 용기를 내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이야기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들의 목소리 저변에는 승전이라는 이름 아래에 사회가 기대하는 방식으로 준비한 또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 어쩌면 책으로 전달된 목소리 또한 완전한 형태는 아닐지도 모르지만, 비로소 그들이 '두 개의 이야기'를 준비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우리는 불완전한 작은 용기들을 조각조각 모아, 완전치 못한 상처의 형태들을 더듬어 본다.

 

여성의 입을 빌려 말하는 보편적인 인간의 아픔

전쟁에 나갔던 사람들은, 평범한 시민이 진짜 군인이 되는 데는 3일이면 충분했다고 회생했다.

이 책을 함께 읽었던 독서 모임 사람들은 하나 같이 이 문장에서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심지어 병사들은 우리의 생각보다도 훨씬 어렸다. 천진하게 트럭 가득 사탕을 사는 병사의 이야기나, 집냄새가 난다며 돌아가며 휴가를 다녀온 병사의 냄새를 돌아가며 맡는 이야기에서 우리는 새삼스럽게 그들의 나이를 실감한다. 공부를 하고, 사랑을 해야 할 10대 병사들이 자진해서 최전선으로 나섰다. 가혹한 전쟁에서 소녀들은 고작 3일 만에 군인의 모습을 하고, 몇 년 만에 백발이 되었다. 그리고 전쟁에 끝나도 그 트라우마에 평생을 시달린다.

나도 모르게 책을 읽으면서 남성의 목소리로 치환하곤 했던 점을 반성한다. 이 책의 모든 이야기가 여성의 입을 통해 나왔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나 또한 여태껏 전쟁을 남자의 목소리를 통해서만 배워왔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병사들에게 나타나는 전통적인 여성상이 유독 이질적 느껴졌다. 머리를 땋고, 수를 놓고, 아이를 탁아소에 맡기는 것들 말이다. 전쟁터에서조차 여성들에게 강요된 성역할이 안타까우면서도, 전쟁은 남성뿐만 아닌 모든 사람들이 겪는 비극이라는 사실을 실감케 한다. 하나의 전쟁이지만 그 안에 아내의 전쟁이 있고, 기관사의 전쟁이 있고, 지하공작원의 전쟁이 있다. 이처럼 작가는, 시점 비틀기를 통해 전쟁에서 겪게 되는 인간 보편적인 슬픔에 주목한다. 그리고 이 책의 목소리들은 여성들이 겪은 부조리를 넘어, 인간이라는 존재가 전쟁을 통해 감내했어야만 했던 아픔들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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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다가 관뒀는데 이 김에 다시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