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라와 태양>, 이타적인 로봇과 인간만의 특별함에 대한 질문

강렬한 표지와 특이한 제목 때문에 언젠가는 읽어야지 하던 책. 해가 짧아지기 시작하던 늦가을에 읽기 시작했다.

 

클라라와 태양


주인공 클라라는 햇빛을 원동력으로 하는 AF(Artificial Friend, 인공지능 친구)로, 조시라는 아이의 집에 분양된다. 조시를 포함한 세상의 아이들은 유전자 조작으로 ‘향상’되지만, 부작용으로 크게 아프곤 한다. 그런 조시를 관찰하고 보살피며, 친구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클라라의 역할이다.

하루는 조시가 모델로 서고 있는 초상화 작업에 따라간다. 알고 보니 그 초상화 작업은 단순 그림이 아니라 조시의 복제품 껍데기를 만드는 작업이었고, 조시의 어머니는 혹시라도 조시가 죽게 된다면 클라라가 그 껍데기(초상화) 안에 들어가 조시가 되길 권한다. 그리고 클라라는 그 모든 것들을 막기 위해 태양에게 아주 간절히 부탁하게 된다.

 


 

신묘한 태양의 힘


 <클라라와 태양>에서는 클라라가 보여주는 인간적인 면모가 강조된다. 클라라는 조시를 낫게 하기 위해 태양이라는 작은 희망을 놓지 않고 자신의 신체 일부를 희생하기도 하며, 심지어는 야적장에 버려지는 순간까지도 인간을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않는다. 

가장 재밌는 점은 클라라가 태양을 숭배하는 모습이다. 우리의 먼 조상들은 당시 가장 큰 자원인 비를 내려주는 대상을 신이라고 생각하며 하늘을 섬겨왔다. 이성의 산물인 인공지능이 태양을 숭배하는 모습은 아이러니하다고 느껴지다가도, 태양에너지로 움직이는 클라라에게는 태양이 가장 큰 자원일 테니 꽤나 합리적인 설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책을 읽으면서 가장 궁금했던 점은 이야기 속의 태양이 정말 신적인 힘을 가진 것인지에 대해서다. 우연의 일치일지 몰라도, '특별한 자양분'을 받은 조시가 건강해지는 것과 이를 릭이 언급하는 장면을 보아 신묘한 힘이 있는 것은 맞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간절하고 선한 마음에 의해 발현되는 것은 가위 인상적이다. 이성과 과학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가장 초과학적인 감성의 영역이 그것을 뛰어넘는 설정은 무수히 많이 봐 왔지만, 조시의 방을 뒤덮는 노란 햇빛의 생명력은 어쩐지 말 그대로 눈부시게 느껴진다.



클라라는 조시가 될 수 있을까?

내가 카팔디를 미워하는 이유가, 마음 깊은 곳에 카팔디 말이 맞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인 것 같아. 카팔디의 주장이 실은 옳다고, 내 딸만의 고유한 무언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내 딸만의 고유한 무언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현재 기술로, 파악해 복사하고 전송할 수 없는 것은 없음을 과학이 확실하게 입증했다고.

 

클라라가 카팔디씨의 작업실에서 조시의 초상화를 발견하는 장면은 충격적이었다. 초상화는 사실 그림이 아니었고, 조시를 복제한 모형이었다. 공중에 떠있는 자식의 모형과 본인을 위해 그 안에 들어가길 바라는 조시의 엄마. 그 어떤 악의도 없이 절박하게 말하는 모습은 섬찟하기까지 하다. 만약 클라라가 조시에게 들어간다면 과연 조시라고 부를 수 있을까? 조시를 완벽히 흉내 내고, 조시가 세상에 없고, 심지어 조시가 그에 대해 합의까지 한다면 그걸로 된 걸까?

사실 우리는 그것이 절대로 조시가 될 수 없음을 안다. 하지만 그 기준이 되는 것들을 우리는 명확히 설명하지 못한다. 여기서 책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로봇과 인간을 구분 짓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하지만 저는 카팔디씨가 잘못된 곳을 찾았다고 생각해요. 아주 특별한 무언가가 분명히 있지만 조시 안에 있는게 아니었어요. 조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안에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카팔디씨가 틀렸고 제가 성공하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클라라와 태양>에서는 그 답을 인간관계에서 찾는다. 어쩌면 거지 아저씨도 누군가의 간절한 애정과 빛나는 사랑으로부터 그러한 특별한 자양분을 받게 된 건 아닐까 싶다. 특별한 자양분과 그 신묘한 힘은 사실 관계와 사랑이라고 나름대로 정의해보고 싶다.



이타적인 로봇과 인간의 특별함

새로운 조시는 모조품이 아니에요. 진짜 조시가 될 거예요. 조시가 계속 이어지는 거라고요. -조시의 어머니
그런데 조시가 하루하루 점점 약해지고 있어요. 제가 오늘 여기 이렇게온 까닭은 해가 얼마나 인자한지 기억하기 때문이에요. 해가 거지 아저씨와 개에게 그랬던 것처럼 큰 연민을 보여주시기만 한다면요. 조시에게 너무나 간절히 필요한 특별한 자양분을 보내 주시기만 한다면요. -클라라

클라라는 본인이 조시를 대체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조시가 건강해지도록 애쓴다. 이 부분이 다른 AI 소설, 영화들과 가장 다른 점이다. 사실, 클라라가 야적장에 버려지는 결말을 생각하면, 조시가 되는 편이 세상에 더 오래 살아남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클라라는 본인의 안위와 무관하게 철저히 이타적으로 조시와 조시 어머니를 생각하여 결정을 내린다.이는 자기자신만을 생각한 조시 어머니의 선택(초상화를 만들어 조시에게 들어갈 것을 권유하는 것)과 대조된다. 결국 작가는 가장 이타적인 로봇을 통해 인간의 특별함에 주목하는 것이다.

 


그리고....


작가인 가즈오 이시구로는 생성형 AI에 반대하는 서명을 냈다. 이 책의 주요 소재가 AI인 만큼 생각해 볼만한 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