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인상 깊은 전시더라도 모든 내용을 기억할 순 없기에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만 정제되어 남고 나머지는 휘발된다. 시간이 지나 쓰는 리뷰에는 더더욱 그런 재미가 있다. 특히 시간이 지나면서 어떤 전시가 나에게 더 큰 울림과 의미가 있었는지 명확해지기 때문이다.
내일을 돌보는 오늘
밤하늘의 별, 혹은 불꽃놀이처럼 보이는 이 작품은 복권을 팔고난 뒤 남은 골판지라고 한다. 반투명한 빛 무리 너머 보이는 세상의 보습은 검은 면과는 대조를 이룬다. 일확천금을 노렸던 사람들의 기대감을 투영하듯 반짝거리는 빛무리가 아름답게도, 허망하게도 느껴진다.
브로큰힐 두개골과 프랏차야 핀통
브로큰힐 두개골이라는 주제를 대상으로 한 작품으로, 전시 설명만 보았을 때는 그 뒷배경이 잘 이해되지 않아 잘 와닿지 않았다. 영국 자연사 박물관, 네이처지, 해외 기사 등를 뒤적거려본 결과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었다.
브로큰힐 두개골은 1921년에 잠비아 동굴 퇴적물에서 발견된 두개골 유물이다. (다만, 비체계적인 복원 과정으로 인해 그 연도 측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네이처지) 발견 이후 런던의 자연사 박물관으로 보내져, 영국과 잠비아 간에 유물 반환과 관련된 논의가 있었다고 한다. 잠비아는 반환을 요구했지만 현재 영국이 공식적으로 소유권을 확보한 상태이다. 잠비아 루사카 국립 미술관에는 이 두개골 대신, 프랏차야 핀통이 제작한 두개골 레플리카가 전시되어 있다. 이는 두개골의 원래 위치와 역사적 맥락을 기념하는 의미를 전한다.
한마디로 이 작품은 브로큰힐 두개골을 레플리카로 복제한 것으로 모자라, 한 번 더 회화로 승화한 작품이다. 결국 이 작품은 브로큰힐 두개골의 소유권 분쟁을 추적하는 프랏차야 핀통의 넓은 작업 영역을 시사하는 동시에, 복제품을 어디까지 예술로 정의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1은 2로 나눈 숫자(One, is the number divided by, two)>라는 제목도, 이러한 히스토리를 알고 나면 쉽게 이해된다. 이는 브로큰힐을 2개로 나누었다는 의미일지언데, 가령 레플리카과 해당 회화작품을 일컫는 것 일수도 있고, 잠비아와 영국을 암시하는 것 일 수도 있다.
환상통은 거울로 치료한다
환상통(Phantom pain)이라는 단어에 꽂혀 있던 때가 있었다. 환상통은 신체가 이미 절단되거나 없는 상태임에도 통증을 느끼는 것을 의미한다. 흥미로운 점은 절단 통증이 아니지만, 착란증세가 아닌 진짜 신경학적 통증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많은 신체 절단 환자들이 그 절단부가 정말로 존재하는 것 처럼 환상통을 겪는다고 한다. 그리고 환상통을 치료하는 방법 중에는 거울로 절단면을 비추어보는 방법이 있다고 한다.
마지막을 장식한 <운명의 기관>은 환상통 치료에 쓰이는 거울을 활용한 바라캇의 커미션 작품으로 가장 인상깊었다. 절단된 냉전의 시기와 그 고통을 '환상통'에 비유하고 그 환상통의 치료제인 거울을 공중에 메단 형상이다. 거울은 dmz 생명력의 상징인 두루미의 모양, 파괴성의 상징인 스텔스 폭격기의 모양의 두 형태가 있으며, 전시 기간동안 이를 교차해 보여준다. 전쟁의 상처와 치유 과정에 있어서의 예술의 역할을 나타내는 동시에, 거울이라는 소재를 반복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전쟁에 대한 성찰적인 의미를 전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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