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의 여자>, 삽질하는 우리 삶에 대한 아베 코보의 일침


 문득 몇 년 전에 감명 깊게 보았던 것들이 휘발되는 것에 대한 강한 안타까움을 느꼈다. 뒤늦게서야 기록의 중요함을 깨달았다. 그래서 써본다. 올해 가장 재밌게 읽었던 책.

 

 

 

선생님, 일탈, 기묘한 모래의 마을

회색 종족은 자기 이외의 인간이 빨강이든 파랑이든 초록이든, 회색 이외의 색을 지녔다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견딜 수 없는 자기혐오에 빠진다.

 초등학교 선생님인 니키 준페이는 교직 생활을 무료히 여겨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여름휴가를 떠난다. 그가 향한 마을은 독특하게도 모래 구덩이 안쪽에 집을 짓고 산다. 그는 동네 주민의 도움으로 과부의 집에서 하루 묵게 되지만 이는 도움이 아니라 함정이었다. 그는 사구에서 나올 수가 없다. 모래는 계속해서 집에 스며들고 파내지 않으면 계속해서 귀찮게 군다. 그 집에서 탈출하기 위해 모래 벽을 타보기도 하고, 협상도, 협박도 해본다. 하지만 모래의 여자는 계속해서 그를 잡아둔다.

 

말그대로 삽질, 또 삽질

요컨대 일상이란 그런 것이다... 그러니까 모두들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기 집에 컴퍼스의 중심을 두는 것이다. 


 모래는 책 전반적으로 노동의 성질을 띤다. 그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사회에서 더 나은 가치를 발휘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래에 잠기지 않기 위해서 계속해서 의미 없는 삽질을 해야 한다. 말 그대로 삽질. 리터럴리. 하지만 그 삽질을 하면서 주인공이 그토록 혐오하던 모래의 세상에 편입되는 과정이 과연 인상적이다. 다르게 해석해 보자면, 노동을 통해서 사회에 편입되는 과정을 보여준다고도 느꼈다. 그리고 그러한 삽질이 반복되는 일상의 부질없음도.

 

모래와 실존주의

인생은 뫼비우스의 띠(Möbius strip)이다.

 많은 서평에서 이 책의 또 다른 주인공은 모래라고들 한다. 책에서는 모래의 속성을 다양하게 표현하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참 특이하다. 고체지만 유체처럼 움직이고, 동시에 사람을 성가시게 한다. 재밌는 점은 모래가 때로는 이상향이기도, 때로는 함정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사구 바깥의 지루한 교직 생활에서는 낭만적인 삶을 동경하고, 사구 안에서는 그렇게 따분하다고 여겼던 교직 생활로 돌아가길 원한다.

 후반부, 주인공이 사구에서 어떻게든 '희망(까마귀 덫)'을 찾아 들뜬 모습이 나온다. 하지만, 덫에는 단 한 마리의 까마귀도 잡히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는 그것을 이용해 유수 구멍을 발견하고, 마침내 탈출할 수 있는 진짜 '희망'을 발견하지만 이미 모래의 세계에 편입된 그는 탈출을 유보한다. 그는 결국 스스로를 가둔다. 

이 부분이 가히 충격적이었다. 왜? 왜 탈출하지 않는건데!

 결말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해 봤다. 작가 아베 코보가 일본의 카프카라는 말이 있다. <모래의 여자>는 실존주의의 대표적인 작품들 중 하나라고 한다. 가지지 못한 것만을 쫓는 뫼비우스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다가, 마침내 뫼비우스에서 벗어나 본인만의 삶의 방향성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실존주의와 일맥상통한다. 실존적인 조건(계속해서 쏟아지는 모래, 사구 안의 삶)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나름의 의미와 삶의 방식을 찾아간다는 점에서 작가의 의도가 보인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 그의 실종 신고문을 보여준다. 이는 바깥세상에서 그의 존재 의의가 없어졌음을 의의한다. 결국 그는 존재 의의가 있는 모래 속 세상을 편도행 티켓으로서 선택한 것이다. 주인공 니키 준페이는 마침내 뫼비우스의 안쪽 면도, 뫼비우스의 바깥쪽 면도 아닌 스스로의 선택에 의한 주체적인 삶을 살게된다. 비록 그것이 모래 속이더라도, 그의 모습을 통해 반복되는 삽질을 일상이라고 포장하는 우리의 모습, 즉, 주체성을 잃어가는 우리 삶에 대한 교훈을 주고자 한게 아닐까.

 


 

말고도 다른 이야기

 

<모래의 여자>, 영화 포스터

 

 

영화도 있는 듯 하다. 사실 조금 보다가 자막이 없으니 힘들어 그만 두었다. 책은 두 번 읽었다. 잘 쓴 글이라 책장이 잘 넘어간다.

책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건조하다. 햇빛이 내리 쬐는 듯한 뜨거움과 한밤의 냉기가 느껴지고, 한편으로는 스릴 넘친다. 문장이 짧아 읽기 쉬워 책을 처음 읽는 친구들에게 많이 추천해줬다. 여름에 읽기를 추천한다.